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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세계 경제가 만만해지는 책

랜디 찰스 에핑 지음 / 이가영 옮김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는 뉴노멀 경제학

우리는 격변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2020년 예고 없이 전 세계에 퍼진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은 5년에서 10년에 걸쳐 변화하게 될 것들을 하루아침에 우리 실생활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비대면 시스템과 무인 시스템이 빠르게 퍼져, 이제는 동네마다 아파트 단지마다 무인 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각종 배달과 배송도 비대면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마이너스까지 떨어졌던 금리는 이제 어디까지 치솟을 지 모를 고금리 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전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빽빽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지금, 해박한 경제 지식을 무기로 삼아야 이 전쟁 같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남을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 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책이 바로 <세계 경제가 만만해지는 책>입니다. 이미 제목에서부터 손이 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세계 경제가 만만해지다니. 정말 제가 찾던 바로 그 책이었습니다. 목차만 읽어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책이었죠. 

목차는 레벨 1부터 레벨 6까지로 구성되어 있어 기본적인 지식부터 점차 수준이 올라가는 느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레벨 1 새로운 세계 경제를 이해하는 기초 지식, 레벨 2 세계 경제는 어떻게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 레벨 3 디지털 콘택트가 우리의 경제생활을 좌우한다, 레벨 4 무역, 전쟁과 협력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레벨 5 우리가 미처 몰랐던 세계 경제의 뒷모습, 레벨 6 밀레니얼부터 그린뉴딜까지, 미래 경제, 이렇게 6가지 챕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레벨에서 우리가 가장 알고 싶고, 알아야 하는 지식을 몇 가지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한 나라의 경제 위기는 어떻게 전 세계로 확산될까

전염병이 국경을 넘어 세계로 퍼지듯, 때론 한 나라의 경제 위기가 다른 나라 경제에 재앙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2000년대 후반의 세계 경기침체는 1930년대 대공황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부동산 시장이 붕괴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금융시장은 정부와 중앙은행이 전례 없는 수준의 개입을 해야 할 정도로 심하게 폭락했습니다. 불안정한 단기 대출금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미국의 서브프라임(비우량) 모기지 상품에 투자했던 세계 각지의 은행이 파산했고, 대규모 세계 경제 위기가 닥칠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경제 위기가 예고되자 몇몇 국가에서는 증시가 반 이하로 주저앉았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를 비롯한 각국의 중앙은행은 전통적으로 금리와 통화량을 이용해 경제성장률을 조절해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도구의 사용 방법입니다. 엔진의 속도가 연료 공급량에 따라 결정되듯, 한 나라의 경제는 통화량과 그에 따라 정해지는 금리의 영향을 받습니다. 중앙은행은 자국의 통화량을 조절합니다. 중앙은행은 정부에 의해 설립된 준공공기관이지만, 변덕스러운 정치인의 과도한 입김을 피해 경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독립성을 보장받습니다. 중앙은행은 선견지명을 가지고 물가상승률과 실업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인플레이션은 대개 경기 과열의 결과로 나타나며, 높은 실업률은 대개 경기침체의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21세기 들어 국경을 넘나드는 국제 자금의 양이 여러 국가의 통화량을 넘어서면서, 한 나라 중앙은행의 화폐 정책이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은 물론이고 그 나라 경제에 미칠 영향조차 정확히 알기 힘들어졌습니다. 대공황은 한 나라의 경제위기가 세계 경제 위기로 확산되는 과정을 뚜렷이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 사실 세계 경제 위기는 각국의 경제가 서로 연결되기 시작한 19세기부터 꾸준히 있었습니다. 가끔 전쟁, 기후 변화, 정치 변동이 금융시장의 무릎을 꿇릴 때도 있지만, 가장 흔한 금융위기의 원인은 반복되는 과잉생산, 투기, 유포리아에 있습니다. 

 

미국 금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인플레이션이 극심할 때, 정부와 통화당국이 주로 쓰는 방법은 통화량을 줄이는 것입니다. 당장 사용 가능한 화폐 중 대부분이 은행 예금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가장 효율적으로 통화량을 줄이는 방법은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의 대출을 제한하고 지급준비율을 높이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은행이 대출을 늘리면 경제가 성장하고, 은행이 대출을 줄이면 경제속도가 느려집니다. 은행의 대출 능력을 결정하는 요인은 두 가지인데, 예금액과 지급준비율입니다. 이 중 지급준비율은 중앙은행 같은 통화당국이 결정합니다. 대다수 은행은 예금액 가운데 일정 비율 이상을 지급준비금으로 보유해야 하며, 이 돈은 고객에게 빌려줄 수 없습니다. 중앙은행이 지급준비율을 높이면 은행이 기업과 소비자에게 빌려줄 수 있는 돈이 줄면서 통화량이 줄어들고, 반대로 지급준비율을 낮추면 은행이 더 많은 돈을 빌려줄 수 있게 되어 경제활동이 활발해지고 그 결과 대출이 더 늘어 통화량이 증가합니다. 경제성장률을 조절하는 또 다른 방법은 이자율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중앙은행은 경제성장률이 너무 낮다고 판단하면, 시중은행에 돈을 빌려줄 때 적용하는 이자율인 '재할인율'을 낮춥니다.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조정하면 경제 전체의 이자율이 바뀝니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이 재할인율을 올리거나 내리면, 은행이 서로에게 대출할 때 적용하는 기준 금리인 유럽의 은행 간 금리와 미국의 연방기금 금리도 따라서 오르고 내립니다. 은행이 돈에 지불하는 비용이 오르면 경제 내 모든 형태의 대출 이자가 오르면서 언제나 결국 소비자와 기업에 그 부담이 전가됩니다. 돈은 다른 여러 상품과 마찬가지로 교환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국가의 이자율은 서로 연관돼 있습니다. 은행과 투자자는 언제나 이자율이 가장 낮은 곳, 즉 돈이 가장 싼 곳으로 몰립니다. 가령 워싱턴의 연방준비제도가 이자율을 올리거나 내리면, 마이애미나 미네소타의 가계 및 기업 대출 금리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금리가 영향을 받습니다. 세계 금융 시장이라는 지구촌에서 금리는 경제활동의 심장 박동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왜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할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26명이 가진 재산이 전 세계 인구 절반이 가진 재산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소득 불평등은 21세기 경제의 주요 화두 중 하나입니다. 많은 노동자와 실업자가 품어온 분노는 유권자들이 수십 년 전에는 들을 수도 없었던 극단적 주장에 표를 던지게 했습니다. 그 결과 비주류 포퓰리스트 정당이 권력을 잡았으며, 독재자들은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심지어 많은 나라에서 사회 이동성, 즉 일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나고 경제적 사회적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가능성마저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사람을 교묘히 조종하는 정치인들이 분노한 노동자들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해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불공평'인 것도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사회 이동성을 판단할 때 가장 널리 쓰이는 지표는 세대 간 소득 탄력성이다. 세대 간 소득 탄력성은 자식의 소득이 부모의 소득과 상당한 차이가 날 확률을 나타낸다. 세대 간 소득 탄력성이 0에 가까울수록 이동성이 높은 사회이고, 1에 가까울수록 자식이 부모와 동일한 수준의 소득을 올리는 사회입니다. 불평등과 낮은 사회 이동성이 언제나 함께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연관된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 이동성처럼 소득 불평등의 정도 또한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데 주로 지니계수를 사용합니다. 대다수 전문가가 유토피아로 여기는 완벽히 평등한 나라는 지니계수가 0이고, 나라 전체의 재산이 한 가정에 집중된 완전히 불평등한 나라의 지니계수는 100입니다. 세계 소득 격차는 지니계수나 세대 간 소득 탄력성 같은 숫자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소득 수준의 차이는 삶의 질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소득 수준이 낮으면 소득의 대부분을 식료품이나 교통비 같은 필수품에 지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소득층 사람들은 대부분 집, 주식, 채권 등에 투자할 초기 자본을 모으지 못합니다.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경제적 안정성 확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자산 보유 여부이며, 특히 집이나 주식, 채권에 투자해 모은 자산이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첫 직장에 들어간 자녀에게 부모가 주는 축하금처럼 적은 액수의 초기 자본이라도 노후 자금을 만드는 데는 큰 도움이 됩니다. 연평균 수익률이 8퍼센트일 때, 초기 자본이 없는 사람은 한 달에 약 3000달러를 저축해야 15년 후 백만장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 자본이 단 2만 달러만 있어도, 초기 자본이 없는 사람이 저축해야 할 금액의 절반도 안 되는 1300달러씩만 다달이 저축하면 15년 후에는 백만장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저소득층은 집을 사거나 주식에 투자할 여윳돈이 없기 때문에 영원히 저소득층으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평

위에서 내용을 잠깐 소개했듯이 이 책에는 세계 경제를 이해하는 기초적인 지식부터 시작해 현재뿐 아니라 미래 경제까지 아우르며 전반적인 경제 지식에 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에는 데이터, 로봇, 인공지능 등이 인간의 노동을 차지한 지금과 노동이 줄어드는 시대에 우리 인간의 일과 삶에 대해 고찰하고, 그 해법에 대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저의 경제 지식이 든든히 채워진 느낌이고, 앞으로 든든한 노후를 위해 꼭 필요한 기본기를 다지게 된 듯하여 기쁩니다.